[The Acton Voice] 중국의 굴기: 과거의 번영을 그리워하는 중국

Siwon Kwak
Bachelor of International Security Studies,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4/October/2014

작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미중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신형대국관계’ 구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하면서 양국 간의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신형대국관계는 이른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양국의 상호호혜 협력을 추진하자는 중국의 제안이다. 시 주석의 이러한 발언은 이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서 국제정치를 논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과거 동아시아의 찬란했던 제국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내포하고 있다.

조공으로 과거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중국

4대 문명의 발상지인 황하를 끼고 있는 중국 대륙에는 수많은 왕조의 탄생과 몰락이 있었지만 모두 조공이라는 체제를 통한 세계질서를 유지했다. 조공이란, 제후가 천자에게 바치는 예로써 주변국들은 바로 이 체제를 통해 천자에게 주권을 인정받았고 당시 중국의 앞선 문물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역사학자 페어뱅크(Fairbank)에 의하면 이 체제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때까지도 이어져왔으며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자국의 특산품을 조공으로 바쳐왔다고 한다. 특히 한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이 가장 정기적으로 공물을 바쳐서 학계에서는 이들을 중국화 된 국가(Sinicized States)라고 분류한다. 수백 년 동안 이러한 체제를 유지해왔던 중국으로서는 자연스럽게 자국 문명이 다른 나라의 문명보다 절대적으로 우수하다고 믿는 중화사상을 가지게 되었으며 실제로 중국 밖의 나라와 부족들을 동이, 서융, 남만, 북적같이 오랑캐라고 칭해왔다.

제국주의와의 충돌 그리고 청의 몰락

중화사상으로 인해 중국은 오만함에 빠져들었으며 이는 나중에 유럽 열강들에 패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17세기 청나라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유럽의 정치구조가 탈바꿈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1648년, 독일에서 30년 전쟁을 끝내는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됐으며 과거 신성로마제국에 충성을 바쳐야 했던 주변국들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주변국들은 더는 신성로마제국의 간섭을 받지 않았지만 동시에 이제는 스스로 주권을 지키기 위한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바깥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산업 혁명은 유럽을 더욱 부강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제국주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현 체제에 안이하고 있던 중국과 끊임없는 발전을 도모했던 유럽 간의 첫 충돌은 1839년에 일어난 아편 문제를 둘러싼 청나라와 영국의 전쟁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영국의 승리였으며 이후 유럽 열강들은 앞다투어 중국에 침략하기 시작했고 결국 청나라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라는 타이틀을 가진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끊임없는 혼란과 치욕을 겪게 된다.

백년의 국치가 가르쳐준 교훈

“百年国耻”(백년국치), 1839년에 일어난 아편전쟁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중국이 외세에 의해 겪은 수모의 기간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수천 년 동안 지속하여온 제국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본 중국은 1949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 더 이상 외세에 의한 간섭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항미원조’(조선을 도와 미국을 저지)라는 정책 아래 6.25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도 바로 백년국치가 준 영향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한국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 중국은 그 후로도 주권을 더욱 굳건히 지키기 위한 외교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1978년,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부국강병을 꾀한다.

올해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지 36년째 되는 해이다. 이 기간 동안 쉼 없는 성장을 이어온 중국은 2006년에는 세계 외환보유고 1위를 기록했으며 현재 무려 4조에 가까운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수출 순위 역시 전체의 10%를 넘어서며 1위를 기록하고 있고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GDP 2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중국은 결코 만족하지 않고 지속 성장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한때 약소국의 설움을 제대로 느껴봤기에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굴기와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

그렇다면 중국의 굴기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분명한 건 별로 달갑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기반을 확실히 다진 미국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패권국의 등장은 끝없는 갈등을 예고한다. 국제정치학계의 거물 미어샤이머(Meashimer)는 앞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패권을 다지려는 중국과 이를 봉쇄하려는 미국과의 기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중국이 이러한 상황에서는 여린 밤비보다는 공격적인 고질라(Better to be Godzilla than Bambi)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정부 체제에서 힘이 없음은 곧 과거와 같은 치욕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중국의 지도부가 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중국은 실제로 영유권 분쟁에 관해서는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으며 특히 대만 문제에 있어서는 필요하다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내비친 적이 있다.

중국의 굴기는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수십 년간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미국과의 갈등을 유발할 것이며 주변국들은 간어제초(間於齊楚)의 상황에 놓일 것이다. 과거의 찬란했던 시대에 대한 중국의 그리움이 결국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또 한 번의 혼란을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