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Hugh Shin
Bachelor of International Security Studies,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17 September 2014
소련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국제사회가 미국의 권력 아래 납작 엎드렸던 현대의 국제체제 속에서 우리는 ‘군비경쟁’이라는 개념을 거의 잊다시피 하며 살아왔다. 물론, 많은 국가들이 각자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과 자원을 투자해온 것은 사실이나 이는 안보와 주권 보호를 근본적, 궁극적 목표로 하는 국가의 자연스러운 ‘성장’에 가까웠다. 무정부적 국제체제 속에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국가의 생존을 보장해줄 수 없기에 국가는 강대국, 중견국 그리고 약소국에 상관없이 꾸준히 군사적 성장을 지향해왔다. 자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군사력을 강화하는 강대국이나, 동맹이라는 외부적 균형을 통해 강대국의 힘에 의존함으로써 군사적 힘을 얻는 중견국 그리고 약소국 모두 국제사회 속에서 각자의 지위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자연스러운 성장을 꾸준히 이어온 것은 국제정치의 지극히 당연한 현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불안정한 안보 환경은 냉전 종식 이후 지금껏 우리가 목격해 온 국가의 ‘자연스러운 군사적 성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듯하다. 와룡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 급격한 성장을 이뤄감에 따라 중국의 군사적 힘은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넘볼 만큼 거대해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과 기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 옥죄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즉,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고래의 거대한 몸부림이 지역의 안보불안정이라는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군비경쟁은 이러한 아태지역 안보불안정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아태지역 국가들을 향한 미국의 반중국정책 참여요구, 중국의 러시아 S-400 MD 구입 희망과 러시아의 판매 결정,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헌법 해석을 통한 군사대국화, 일본과 호주의 무기 공동개발 합의 그리고 한국의 사드(THAAD) 도입까지. 이 모든 군사력 강화 동향은 이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군비확대경쟁이 시작되었음을 입증한다.
혹자는 냉전시대를 예로 들어 군비확대경쟁이 단순한 군사력 증강일 뿐 실질적인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기우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전시대의 군비확대경쟁이 제 3차 대전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그 시대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인해 오늘날 세계는 핵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 놓여있다. 군비확대경쟁으로 인한 필요이상의 무기, 특히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은 국가 간 전쟁의 피해 규모를 확대시킴과 동시에 불량국가나 테러집단의 WMD 획득·사용의 위협 역시 증폭시켰다.
핵전쟁에 대한 낙관론자들은 과거 미-소 냉전시대가 핵전쟁의 공포로 인해 그야말로 ‘냉전’에 머물 수 있었던 것처럼 중국과 미국 모두 강력한 핵보유국이기에 이 두 강대국의 싸움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둘의 무력 충돌을 억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핵평화 이론 – 핵무기의 상호확증파괴가 형성하는 핵억지력이 결국 핵보유국간의 핵전쟁을 예방한다는 이론 – 과 경제적 상호의존성 등과 같은 낙관론에 빠져 이 불안정한 지역안보환경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국제정치의 ‘불확실성’과 ‘계산 착오’는 자주 외교적, 전략적 갈등을 유발하며, 국가 간 불신과 경쟁의식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러한 갈등은 얼마든지 전쟁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평화 이론은 ‘국가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명제를 토대로 성립된 이론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핵을 보유한 두 국가 사이에는 상호파괴적인 핵전쟁이 발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핵무기가 도래한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는 단 한번도 핵보유국 간의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인류는 핵전쟁을 ‘아주 위협적인 그러나 결코 일어나지 않을 전쟁’으로 치부해버리는 편리함을 고집해왔다. 미-소 냉전과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핵전쟁의 문턱에서 마무리되었고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역시 아직까지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례가 핵전쟁에 대한 인류의 불감증 낳았다. 아직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이라 믿는 어리석음과 별반 다름없다. 더 나아가 낙관론자들이 간과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는 사실은 모든 핵보유국이 동일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정 핵무장 국가가 타 핵보유국의 핵보복 능력을 선제적 타격을 통해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핵무기를 이용한 선제공격은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군사옵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량의 핵무기를 가진 미국의 경우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북한의 핵시설 파괴를 목적으로하는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데 앞서 준비해야할 것은 능력이 아닌 의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결코 핵전쟁에 대해 낙관적일 수 없다.
한편,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더더욱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안보적 두려움과 국가적 명예 그리고 전략적 이해관계보다 항상 우선시될 것이라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 근거가 취약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국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이었고 그들 역시 전쟁이 심각한 경제적 손해를 일으킬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할 때에도 푸틴은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이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경제제재로 이어질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이익과 더불어 두려움과 명예를 들었다. 호주의 전략학자 휴 화이트(Hugh White)는 이 세 가지 원인이 오늘날에는 돈과 안보 그리고 지위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돈, 즉 경제적 이익은 국가가 전쟁 개시 혹은 참여를 결정함에 있어 분명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유일한 결정 요소는 아니다. 경제적 손해가 자명하더라도 나머지 두 요소, 안보적 두려움과 국가 명예의 측면에서 전쟁이 이롭다고 판단될 시 국가는 얼마든지 전쟁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아시아 태평양은 이미 한반도 분단, 조어도 분쟁, 독도 분쟁, 남중국해 분쟁, 대만문제, 한·일 및 중·일 역사문제, 동북아 민족주의 그리고 북핵문제라는 여러 폭탄들을 품고 있는 화약고나 다름없다. 더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안보 도화선들이 한 고리에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가 터지면 나머지 역시 모두 폭발하는 연쇄폭발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폭탄들의 연이은 폭발은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는 대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아시아 태평양이라는 화약고 전체가 폭발하게 된다는 소리다.
혹자는 앞서 거론된 안보 문제들이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보다는 현재와 같은 교착상태로 유지될 확률이 높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전쟁, 특히 핵무기가 사용되는 현대 전쟁은 공멸의 지름길이기에 어느 국가도 전쟁을 원치 않을 것이라 보는 부류 역시 존재한다. 또 어떤 부류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언을 따라 전쟁을 또 다른 형태의 외교적 수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전쟁의 발발과 진행이 국가의 정교하고도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통제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듯 전쟁이 항상 합리적 계산에 따른 정확한 판단에 의해 발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은 자주 충동적 원인과 잘못된 계산으로부터 시작되며, 한번 시작된 전쟁을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잘못된 계산에 따른 과도한 자신감, 혹은 상대국가에 대한 필요이상의 두려움은 국가들로 하여금 얼마든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끔 만든다. 차라리 국가가 돈, 안보, 지위의 틀 안에서 항상 정확한 계산을 통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행위자였다면 우리는 전쟁의 개연성을 좀 더 명확히 예측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가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명제는 현실보다는 이상에 가깝다. 한국전쟁 역시 북한의 잘못된 계산이 트리거 포인트가 되어 일어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에 의한 아태지역 국가들의 군사력 증강을 단순히 新 냉전시대의 현상 중 하나로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아태지역 국가들의 군사력 증강과 현대화는 단순한 ‘성장’이라하기 어렵다. 명백한 군비확대경쟁이다. 군비확대경쟁은 역내 국가들로 하여금 서로 과도한 경계를 하게 만들며, 이런 과도한 경계는 국가 간의 신뢰 구축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외교관계를 교착 상태로 몰아넣는다. 이렇게 교착된 외교관계는 국가 간 대화를 단절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화가 단절된 국가들은 서로 상대방의 의도와 목적에 대한 더욱 깊은 불확실성을 갖게 되고 이러한 외교적 불확실성은 계산 착오적 국가 행위의 원인으로 이어진다. 이는 전쟁으로 가는 통상적인 경로이다.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나 핵무기의 상호확증파괴에 기인한 전쟁 억지력만 믿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 불안정을 모른 체하기에는 지역이 안고 있는 전쟁 도화선이 너무 많고 군비확대경쟁 역시 너무 치열하다. 발화되지 않은 화약고는 당연히 조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약고는 화약고다. 지금은 안보불감증을 버려야 할 때이다.